안녕하세요. 카카오벤처스 투자팀입니다.
투자팀은 늘 창업 초기 단계에 있는 스타트업들과 함께 하며 시장 동향을 살피고 있는데요. 그러다 보면 궁금증과 고민이 생겨서 팀 안팎으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아마 시장에 관심을 가진 분이라면 누구나 저희와 비슷한 상황에 있으실 듯합니다. 생각은 다양할수록, 대화는 깊을수록 좋기 때문에 저희가 가졌던 생각의 일부를 앞으로 하나씩 공유해 드리고자 합니다. 창업자, 투자자, 혹은 시장에 흥미를 가지신 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최근 다이소 건강기능식품 판매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 달에 5천 원이면 구매할 수 있는 건기식이 등장하면서, MZ세대부터 중장년층까지 모두 다이소로 향했는데요. 다이소의 뒤를 이어 편의점과 C커머스도 본격적으로 참전하며 건기식 유통 채널은 다양해지고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지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서 많이 본 듯하지 않으신가요?

2년 전, 다이소가 VT코스메틱의 리들샷을 판매하면서 일었던 ‘다이소 품절 대란’이 떠오릅니다. 당시 "다이소에서 저렴하게 판매하는 건 품질이 떨어져서 그렇다", "다이소가 올리브영의 경쟁자가 될 수 있을까?" 같은 회의적인 반응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다이소 뷰티 제품은 MZ세대 중심의 '갓성비' 소비에 힘입어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죠.
이번에는 다이소 화장품에서 다이소 건기식으로 무대가 옮겨졌습니다. 경쟁 구도 역시 '올리브영 vs 다이소'를 넘어, '약국·올리브영·이커머스 vs 다이소'로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데요.

이러한 흐름을 보다 보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따라옵니다.
"건기식 산업, 뷰티 산업이 걸어온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걸까?"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뷰티 산업에서 선행된 변화들이 건기식 시장에서도 비슷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뜻일 텐데요. 뷰티 업계에서 인디 브랜드들이 대형 브랜드 중심의 시장 질서를 빠르게 흔들었던 것처럼, 건기식 시장에서도 스타트업과 인디 브랜드가 기회를 만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번 글에서는 뷰티와 건기식이 정말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 안에서 스타트업이 주목할 만한 기회는 무엇인지 탐색해보려 합니다.
건기식과 뷰티, 진짜 닮았을까?
겉으로 보기엔 제법 닮았습니다.
먼저, 공급자 관점에서 살펴보면, 뷰티와 건기식 산업 모두 브랜드 중심으로 기회가 열려있는 시장이라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직접 제조보다는 OEM·OD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브랜드는 제품 기획과 마케팅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요.
브랜드 입장에서 초기 진입장벽도 비교적 낮은 편인데요. ODM 산업의 발달로 소량 생산과 커스터마이징 옵션을 제공하는 경우가 늘면서, 초기 자본이 크지 않아도 제품을 기획하고 테스트해 볼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소규모 브랜드도 빠르게 제품을 출시하고 시장의 반응을 토대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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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비자 관점에서도 공통점이 보입니다. 유통 채널이 오프라인에서 이커머스로 옮겨가면서, 소비자들은 제품을 직접 써보는 대신 성분, 원료, 임상 데이터 같은 텍스트 기반 정보를 적극적으로 탐색하는 데 점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리뷰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자리 잡았는데요. 본인과 비슷한 피부 타입이나 체질을 지닌 사람이 올린 이미지와 영상 기반 리뷰를 꼼꼼히 살피며,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부작용은 없는지 간접적으로 검증합니다. 제품을 처음 인지하는 순간부터 구매 결정을 내리기까지, SNS 기반 인플루언서 콘텐츠와 입소문이 핵심 역할을 한다는 점도 두 산업 모두에 나타나는 특징이죠.
이렇듯 공급자와 소비자 양쪽의 움직임을 보면, "뷰티와 건기식은 비슷한 방식으로 움직인다"고 말하고 싶어지는데요.
하지만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소비자와 브랜드가 신뢰를 형성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뷰티 제품은 직접 써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한 반면, 건기식은 섭취해도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요. 전자는 경험에 기반한 신뢰, 후자는 믿음에 기대는 신용 위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 뜯어볼까요?
탐색재–경험재–신용재 프레임으로 보면 보이는 것들
1. 탐색재–경험재–신용재
소비자가 제품에 대한 신뢰를 어떻게 형성하는지, 그리고 어느 시점에 품질이나 효과를 판단하는지는 제품을 기획하고 마케팅 전략을 세울 때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이에 따라 재화를 탐색재(Search Goods), 경험재(Experience Goods), 신용재(Credence Goods)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탐색재: 제품을 직접 구매하지 않아도, 정보 탐색만으로 품질을 판단할 수 있는 제품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책, 의류, 전자기기처럼 외형이나 스펙, 성분표로 사전 판단이 가능한 제품군이 여기에 해당되죠.
경험재: 제품을 실제로 사용해 본 후에야 품질을 평가할 수 있는 제품입니다. 맛, 향, 촉감, 피부 반응처럼 사용 이후 드러나는 특성이 구매를 결정짓는 핵심이 됩니다.
신용재: 제품을 사용한 이후에도 효과나 품질을 소비자가 직접 검증하기 어려운 제품입니다. 의료 서비스, 보험, 건강기능식품 등이 대표적인데요. 전문가의 조언, 과학적 데이터, 브랜드 신뢰도에 의존해 구매 결정이 이루어지는 구조를 가집니다.
그럼 이제 정리한 기준을 바탕으로, 기초 화장품(스킨케어), 색조 화장품(메이크업), 건강기능식품은 각각 어디쯤에 위치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스킨케어–메이크업–건강기능식품
메이크업(색조 화장품): 탐색재처럼 소비되는 경험재
색조 화장품은 '써봐야 아는' 경험재이면서도, '남이 쓰는 걸 보면 나도 알 수 있는' 탐색재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소비자는 제품을 직접 사용해 본 뒤 발색, 텍스처, 지속력, 밀착력 등 눈에 보이거나 감각적으로 체감되는 요소를 통해 제품의 품질을 판단합니다. 한두 번만 사용해 봐도 효과를 빠르게 인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색조 화장품은 전형적인 경험재에 가깝죠.
그런데 최근에는 유튜브, 틱톡, 인스타그램 등에서 인플루언서 시연 영상, 발색 비교, 실사용 후기 등 제품 추천 콘텐츠가 활발히 생산되고 있는데요. 덕분에 소비자가 직접 사용해보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제품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습니다. 즉, 이커머스와 SNS가 결합하며 '탐색이 곧 경험'이 되어버린 셈이죠.
스킨케어(기초 화장품): 경험재와 신용재 사이에서
기초 화장품은 경험재와 신용재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 제품군입니다. 색조 화장품보다 경험재적인 요소도, 신용재적인 요소도 더 강하게 작용한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예를 들어, 수분감, 진정 효과처럼 사용 직후 감각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요소는 소비자가 빠르게 효과를 ‘느끼며’ 판단하게 만듭니다. 이런 제품은 경험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죠. 반면 미백·주름 개선·피부 장벽 강화와 같은 기능성 제품은 일정 기간 반복적으로 사용한 후에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피부 타입이나 컨디션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 스스로 품질을 명확히 판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용재적 불확실성도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에 더해, 스킨케어 제품도 점차 탐색재에 가깝게 소비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데요. '화해'처럼 성분을 분석해 주는 앱을 활용하거나, 이커머스 앱 내 누적된 수천 개의 리뷰와 '디렉터파이'처럼 전문가가의 콘텐츠를 참고해 제품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아졌습니다. 제품을 직접 사용해보지 않아도 정보 탐색만으로 어느 정도 품질을 예측할 수 있게 된 거죠.
정리하자면, 기초 화장품은 즉각적인 감각 경험(경험재), 정보 기반의 간접 검증(탐색재), 반복 사용을 전제로 한 신뢰 기반의 기대(신용재)가 함께 작동하는 재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특히 피부에 직접 바르는 제품인 만큼, 소비자는 소위 말하는 ‘피부가 뒤집어지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더 신중하게 제품을 고르는데요. 구매 전 정보 탐색, 사용 중의 경험, 사용 후 기대감까지 전 과정에서 신뢰를 축적해 나가는 방식으로 제품을 소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렇듯 불확실성과 기대가 뒤섞인 구조 속에서, 백화점 1층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부 럭셔리 브랜드는 신뢰를 보다 명확히 '설계'합니다. 임상 데이터를 통한 기능 검증, 특허 성분의 효능 강조, 브랜드의 오랜 헤리티지와 기술력을 결합한 스토리텔링까지, '과학적으로 믿을 수 있는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장치들입니다. 그 결과, 소비자에게는 확신을, 브랜드에게는 가격 프리미엄의 정당성을 동시에 부여하는 구조가 완성됩니다.
건강기능식품: 여전히 신용재
건강기능식품도 이제는 어느 정도 탐색재처럼 소비되기 시작했는데요. 2024년 기준 이커머스 유통 비중은 70%에 달하고, 2025년 들어서는 다이소·편의점·C커머스 플랫폼까지 본격적으로 유통에 뛰어들며 채널이 한층 다각화되었습니다. 약국 유통의 비중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이렇듯 건기식은 전문가의 설명 없이도 소비자 스스로 충분히 ‘탐색 가능한 제품’처럼 보이기 시작한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기식은 여전히 '신용재'의 특성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그 이유는 섭취 후 효과를 즉각적으로 느끼기 어렵고, 장기간 복용하더라도 그 효능이 실제로 있었는지 판단하기 애매하기 때문인데요. 특히 면역력 증진, 간 건강, 기억력 개선 등의 기능은 그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을뿐더러, 타인과 비교하기도 어렵고 과거의 나와 비교하더라도 차이를 인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먹어서 나아진 건지, 먹지 않았다면 과연 나빠졌을지조차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거죠.
그래서 건기식 브랜드는 '믿을 만하다'는 인상을, 즉 신뢰와 신용을 설계해야 합니다. 그래야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건강과 관련된 전문 지식까지 탐색해야 하는 소비자 비용을 줄여주고, 경험만으로 판단이 어렵다는 페인 포인트를 깎아내기 위해 브랜드는 전문가·데이터·브랜딩에 외부 권위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게 됩니다. 결국 제품 그 자체만으로는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기에, 제품을 둘러싼 '신뢰 구조'가 구매를 결정짓는 시장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건기식 브랜드들은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신용을 설계합니다.
의사·약사·약대 출신 대표를 내세워 전문가 후광 효과를 만들고,
기능성 원료와 임상 시험 데이터를 중심으로 과학적 메시지를 강화하며,
연예인 모델을 기용해 대중적 신뢰를 증폭시키기도 합니다.
'의사가 만든 브랜드'라는 점을 내세운 에스더포뮬러가 꾸준한 인기를 끄는 이유도, 종근당·에이치와이·한국인삼공사처럼 레거시와 업력을 축적한 제약·건기식 기업이 높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백화점 1층의 럭셔리 화장품 브랜드가 신뢰를 설계하는 방식과 비슷하지 않은가요?
스타트업의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
그렇다면, '신용'이 강하게 작동하는 건기식 시장에 스타트업과 인디 브랜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든 브랜드가 반드시 '신뢰'만으로 승부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건기식도 뷰티처럼 소비되도록 설계한다면, 오히려 그 틈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어지는 내용에서는, 스타트업이 시도해 볼 수 있는 세 가지 접근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1. 신용재 성격이 약한 카테고리 공략하기
가장 직접적인 접근 방식은 신용재로서의 특성이 약한 카테고리부터 진입하는 것입니다. 먹어도 잘 모르겠는 효능보다 섭취 후 비교적 빠르게 효과를 체감할 수 있는 제품군은 소비자 입장에서 판단이 쉬운 만큼, 브랜드 입장에서도 유리한 진입 포인트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면역력 증진이나 간 기능 개선처럼 건강과 밀접한 카테고리는 소비자가 효과를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이어트, 붓기 관리, 피부 톤 개선, 이너뷰티처럼 외형적 변화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제품군은 상대적으로 체감 속도도 빠르고 결과도 가시적인데요. 즉, '뷰티에 가까운 건기식'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건기식 인디 브랜드 '푸드올로지'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푸드올로지 빨간통'으로 알려진 푸드올로지의 대표 제품 '콜레올로지 PRO'는 올리브영 건강기능식품 부문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는데요. 강렬한 컬러 마케팅으로 인지도를 높인 것도 효과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브랜드의 주력 제품군이 다이어트, 쾌변, 피부 건강 등 비교적 체감이 빠른 카테고리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물론, 올리브영이라는 유통 채널이 2030 여성 소비자 중심의 뷰티 플랫폼이라는 점도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고 보는데요. 하지만 단지 유통 채널만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신용이 덜 필요한' 제품군을 택한 판단이 브랜드 성장을 견인한 핵심 요인 중 하나라고 보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저속노화'와 '헬시플레저' 트렌드의 확산에 힘입어 뷰티와 이너뷰티의 경계가 흐려지는 흐름이 가속화되고 있는데요. 지그재그·에이블리·무신사 등 패션 커머스 플랫폼도 뷰티·건기식 카테고리를 강화하고 있으며, 실제로 지그재그에서는 '이너뷰티' 검색량이 전년 동기 대비 18배(1714%) 이상 증가하기도 했죠.

또한, 건기식은 한 번 먹고 끝나는 제품이 아니라 '관리를 위해 반복 섭취하는' 루틴형 소비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장기적인 리텐션 확보에도 유리한 카테고리입니다. 정리하자면, 건기식이라는 카테고리 전체를 정면 돌파하기보다, 신뢰 설계가 덜 요구되는 영역부터 시작해 소비자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접근이 현실적으로 유리할 수 있겠습니다.
2. 경험재 요소 강화하기
기억에 남고 한 번쯤 사 먹어보고 싶어지는 건기식 제품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먹는 경험'이 명확하게 설계되어 있다는 건데요. 일반식품이 아닌 건기식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효능'이라는 기능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지만, 오히려 소비자가 관심을 두는 건 감각적 경험 요소일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제형이 독특하거나 복용 방식이 직관적이고 재미있을 때, 또는 맛과 향이 좋다는 이유로 반복 섭취의 의지가 달라지기도 하죠. 이처럼 '맛있는 건기식'이라는 키워드는 단순한 부가 요소가 아니라 재구매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한 '푸드올로지'의 '콜레올로지 컷팅 젤리'도 좋은 예입니다. 젤리 제형을 강조해 '간편하고 맛있게 다이어트할 수 있는 건기식'이라는 포지셔닝을 만들어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해당 제품은 틱톡과 인스타그램 숏폼 콘텐츠로 섭취 장면을 콘텐츠화해 글로벌 타겟 마케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섭취 경험을 콘텐츠로 연결할 수 있는 제품 설계는 마케팅과 제품 기획 및 개발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를 만들어냅니다. 콘텐츠에 적합한 제품이 곧 '좋은 제품'이 되는 시대, 이제는 경험재로서의 가능성을 고려한 제품 설계가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제조사에서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코스맥스바이오는 최근 젤리 제형에 특화된 생산라인 '젤릭스'를 구축했는데요. "이전에는 연질 캡슐이 주를 이뤘지만, 최근에는 맛과 제형을 경험할 수 있는 분말·젤리·액상 선호도가 높다"는 인터뷰에서 알 수 있듯, 제조사도 브랜드의 수요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국건강기능식품협회에 따르면, 국내 젤리 제형 건기식 시장은 2020년 311억 원에서 2023년 693억 원으로 4년간 두 배 이상 성장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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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누가 신용을 대신 얹어줄 수 있을까?
건기식은 원래 '설명해 주는 사람' 필요한 제품이었습니다. 제품 특성상 바로 효과가 느껴지지 않다 보니, 그 빈자리에 '믿고 먹을만하다'는 신뢰를 얹어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건데요.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건기식 시장의 핵심 유통 채널 중 하나는 방문판매였습니다. 신한투자증권의 리포트에 따르면, 당시 방문판매가 전체 건기식 판매의 약 20%를 차지했다고 하는데요. 소비자에게 직접 찾아가 제품을 설명하고, 건강 관리의 필요성을 사람을 통해 설득하는 구조가 효과적이었던 겁니다. 이처럼 건기식 시장의 초창기 성장은 관계 기반의 신뢰 형성 방식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는 누가 이런 신뢰를 대신 얹어줄 수 있을까요?
최근에는 인플루언서가 디지털 시대의 방문판매원 역할을 소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단순 협찬을 넘어 직접 건기식 공동구매를 기획하거나 단독 PB 상품을 론칭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는데요. 브랜드 공식몰보다 인플루언서 공동구매가 더 저렴하거나, 팔로워와 활발히 소통하며 구매 유인을 높이는 모습은 방문판매의 핵심이었던 '관계 기반 설득 구조'와 비슷하게 느껴집니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건기식 인디 브랜드 '뉴베러'의 사례를 살펴볼까요? '뉴베러'는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제대로 활용하며, 인플루언서와 팔로워 간의 장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방식을 보여줍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스토리를 통한 실시간 소통, 수십 차례 반복되는 공동구매, 구매 인증 스토리 리그램 등은 제품보다도 인플루언서의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팬덤 기반 세일즈 역량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브랜드 중심신뢰 설계 방식과는 결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인플루언서가 의사나 제약회사의 신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을지는 더 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다만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질문을 던져본다면, 인플루언서는 신뢰를 제공하는 존재일까요, 경험을 중개하는 존재일까요? 혹은 건기식 시장에서도 팬과 소비자가 결합된 '팬슈머' 모델이 본격적으로 작동하기 시작한 걸까요?
분명한 건, 이들은 기존의 권위 기반 신용 대신 '관계 기반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결과 건기식의 소비 문턱은 이전보다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함께요.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소비 패턴과 유통 구조만 보면 건강기능식품은 뷰티가 걸어온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듯 보입니다. ODM을 기반으로 한 브랜드 중심 시장 구조, 이커머스와 소셜미디어 기반의 구매 결정 방식, 그리고 점점 더 낮아지는 진입 장벽까지 겉보기에 이 둘은 충분히 닮아 있는데요.
하지만 제품의 속성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신뢰를 형성하는 방식'이라는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스킨케어와 메이크업은 ‘써보면 안다’는 전제가 어느 정도 작동하지만, 건기식은 여전히 ‘써봐도 잘 모르겠는 제품’이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스타트업의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요? 오히려 '신용'이라는 장벽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 특성을 감안해 기획과 마케팅 방식을 달리 한다면 스타트업이 충분히 파고들 수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타트업이 가진 빠른 실행력은 이 시장에서 필요한 속도감과 유연함과도 맞닿아 있으니까요.
이 글을 시작하며 던졌던 질문, "건기식, 뷰티가 걸어온 궤적을 따라가고 있는 걸까?"를 "건기식, 뷰티처럼 팔 수 있을까?"로 연결해보고 싶은데요. 이 상상이 건기식 시장을 바라보는 새로운 실마리가 되기를, 그리고 이 시장을 두드리는 모든 창업자분들께 작은 인사이트와 응원이 되었기를 바라며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
더 많은 인사이트를 편하게 받아보세요 :)